AI
요즘 창작물은 Ai의 시대이다. 사실 사회 전체가 그렇기에 별로 이상한 점도 아니다. 가장 삶에 가까운 것은 유튜브를 보면 알 수 있다. 쇼츠를 내리다 보면 나오는 다른 채널에서 같은 내용으로 이야기하는 신기한 잡학상식, Ai가 추천해서 만들어진 영상이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남의 영상을 짧게 잘라 맞춤법이 틀리거나 문맥상 이상한 자막을 붙이고 TTS 를 붙인 영상, Ai가 만든 영상이다. 더 나아가 요즘 음악에서도 Ai로 작곡하고 숨긴채로 돈을 버는 사람이 넘쳐난다.
Ai가 창작자를 대체한다는 말을 싫어한다. Ai는 창작자를 죽인다. Ai가 발전한 세상은 창작의 의지를 짓밟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Ai로 만든 것도 창작이라고. 당신은 창작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다. 창작은 인류의 틀을 부수는 유일한 행위이자 욕망의 결정체이다. Ai는 결국 인류의 틀을 부수지 못한다. Ai가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졌다면, 인상주의 화가가 등장하고 표현주의 화가가 등장하며 미술관에서 몽크의 절규와 모네의 해돋이를 볼 수 있었을까?
지금 이 과도기 속에서 돈을 벌기 위해 Ai로 창작물을 사정하는 사람들은 그 돈이 인류 역사 속에서 인류의 벽을 부순 창작물들의 가치이자 미래의 가치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언젠가 그 금고 속에 있는 돈이 다 떨어지고 나서야 깨닫겠지만.
Ai가 개인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인류 모든 사람들과 개인을 비교했는지 의구심이 든다. 70억명 중에서, Ai는 생각할 수 없는, 전 인류들이 생각하지 못한 창의적인 해석을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을까.
Ai의 학문적인 성과에 집중해보자. 학문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절대적인 틀이 잡혀있는 귀납적 행위이다. 아라비아 숫자와 기호들로 이루어진 틀 속에서 Ai는 겉으로 보기에는 학자들을 대체할 수 있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 갈릴레이, 뉴턴, 보어, 아인슈타인과 같은 혁명가는 나타날 수 있을까.
Ai가 과연 미래를 가는 타임머신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